멘트리의 구성원으로서 2022년 ‘취멘파’(일본 취업 멘토링 파티) 준비과정을 지켜보면서 세 가지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번째는 12월 초의 평일에 행사가 잡혔다는 점이었다. ‘본격적인 연말 시즌이 찾아오기 전에 한 해의 업무와 수업 마무리를 하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에 과연 몇 명이나 올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두 번째로 놀란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7명의 멘트리 멘토진이 참가의사를 밝혔다는 사실이었다. SW 엔지니어(4명), 서비스 기획 및 전략(7명), 디자인(2명), 마케팅(2명), 인사/영업(2명) 분야에서 각기 팀을 이끌거나 팀의 핵심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들을 취멘파가 자석처럼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동시에 귀한 시간을 선뜻 내준 멘토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의 학생들이 모일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학생들에게 참여 신청을 독려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참가신청 마감일이 넉넉하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신청자 수가 100명을 훌쩍 넘겨 신청에 실패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필자도 아직 취멘파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에 150명에 가까운 거대한 인원이 한 공간에 모여서 만들어 내는 화학작용이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행사를 공동주최한 KOTRA, 산업인력공단, 재일한국유학생연합회, 그리고 멘트리 관계자들의 간단한 조직 및 사업 소개가 끝나고 ‘패널토크’로 본격적인 멘토링의 시간이 열렸다.
이때부터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4~5명의 패널이 무대 위에서 아무리 뼈와 살이 되는 얘기를 해도 질의응답 시간이 되면 거짓말처럼 침묵의 시간에 빠져드는 광경을 수많은 학회나 토론회 등에서 목도했다. 청중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금년 취멘파는 달랐다. 데이터 분석가, 디자이너, 컨설팅, 영업 그리고 SW 엔지니어로 일하는 5명의 패널이 각자 커리어 경험을 공유할 때부터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손이 들썩들썩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을 때 단 1초의 공백도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일본의 노동시장과 조직 내에서 한국인만의 강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창업이 꿈인데 어떻게 좋은 파트너를 찾을 수 있을지?”, “커리어 성장의 측면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부업을 병행할 수 있는지?” 등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 질문들은 모두 패널로 참가한 멘트리 멘토진의 직접 경험 영역 안에 있었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MBA의 기회비용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 “공부는 언제 성과가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ROI(투자 대비 수익)을 따질 수 없다”고 답한 강철호 멘토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열기는 6~8명씩 모인 테이블 단위로 즉석 멘토링이 진행되는 ‘2부. 그룹 멘토링’ 시간에 들어서서 폭발했다. 먼저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각기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얘기하고, 테이블에 배정된 멘토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조언을 해주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미래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고민을 서슴없이 나누는 참가자, 그 고민에 대한 다른 참가자들의 깊은 공감, 단 하나의 고민의 조각도 놓치지 않으려고 경청하는 멘토의 태도가 맞물려서 열섬 효과를 만들어냈다. 멘토와 참가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모든 테이블에서 뿜어져 나오다보니 어떤 테이블에 눈과 귀를 집중해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게 자기소개가 한 바퀴 돈 후에 자유질문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IT 업계에 대한 막연한 관심과 추상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은 끝없이 세분화·전문화하는 업계의 직무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했다. 윤병우 멘토는 BX 디자이너의, 전민수 멘토는 커스터머 엔지니어의 , 그리고 박영수 멘토는 정보보안 컨설턴트의 일에 어떤 의미, 보람, 그리고 기회가 있는지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갔다. 한편, 대학교를 졸업하고 격동의 커리어의 초반부를 보내고 있는 참가자들은 이직과 전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손예지 멘토는 일본의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IT 업체로 이직한 과정을 단계별로 설명하면서, 면접과정에서 ‘자신의 강점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프레젠테이션’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혹시나 조언이 너무 추상적이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면접을 위해 공들여 만든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공유해주겠다고 옆에서 듣던 필자도 깜짝 놀랄 파격 제안을 하기도 했다. 모든 멘토가 ‘내가 경험했던 삽질을 멘티들은 절대 겪게 하지 않을 거야!’ 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그룹 멘토링에 임하는 분위기였다.
여러 테이블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테마 중 하나는 국가 간 비교였다. 일본 기업과 비교할 때 글로벌 기업의 장점, 반대로 글로벌 기업에 대해 일본 기업이 갖는 비교 우위, 한국과 일본에서의 커리어 비교 등등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멘토 대부분이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일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뜨뜻미지근한 덕담을 넘어서 업계 현실에 뿌리내린 냉정한 분석과 조언이 뒤따랐다. 현재 글로벌 기업의 HR 부서에서 채용담당자로 일하는 김영주 멘토는 일본에서는 스펙이 필요 없다는 ‘편견’에 대해 냉철한 비평을, 강소연 멘토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일견 안정적으로 보이는 일본 대기업의 일상에서 ‘멘탈 지키기’의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위한 본인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했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행사장 전체가 열띤 토론의 현장이 되었다.
속이 꽉 찬 그룹 멘토링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렀다. 어느 새 행사를 시작한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 마지막 순서인 ‘자유 네트워킹’이 시작됐다. 사실 필자는 자유 네트워킹에 대해 조금 걱정한 바가 있었다. 학회 같은 경우 자유 네트워킹 시간이 시작되면 특정 연사에게만 사람들이 몰리는 다소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취멘파 현장에서 그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참가자들의 니즈가 워낙 다양했고, 그만큼 멘토들의 배경과 경험의 폭도 넓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자유 네트워킹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얘기를 더 나누고 싶었던 멘토 곁으로 달려가 떨어지지를 않았다. 멘토를 중심으로 3~5명씩 옹기종기 모여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던 그 시간이 여전히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너무나 따뜻한 풍경이었다. 원래 15분 예정이었던 자유 네트워킹 시간은 장소 사정으로 주최 측에서 몇 차례 절박한 종료 공지를 한 후에야 겨우 막을 내렸다. 30분 가까이 이어진 후였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필자만 그렇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몇 몇 멘토들과 자연스럽게 2차 술자리로 이동해 맥주를 마시며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렸던 취멘파의 순간들을 되돌아봤다. 어떻게 그런 분위기가 가능했을까? 그룹 멘토링 시간에 한 멘토가 네트워크 만들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참가자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 언젠가는 반드시 내게도 도움이 돌아온다. 커리어는 그렇게 함께 달리는 마라톤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그 답이 들어있는 것 같다.
글: 노성철
다음 이벤트 진행 시에 메일로 알림을 드릴 예정이니, 이번 기회에 멘트리 서비스에 가입해보세요!!